사도행전 1장 1절부터 8절 요약
사도행전 1장
사도행전은 제목 그대로 사도들이 행했던 이야기 입니다.
마태,마가,누가, 요한의 사복음서 뒤에 바로 사도행전이 있습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배치를 했을까요?
사실 신약성서에서 기록된 수선로 보면 사복음서보다 서신서가 먼저 기록되었습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데살로니가 전서가 가장 먼저 기록된 서신이고, 나머지 신약뒤에 붙어있는 서신들이
먼저 기록되고, 복음서가 기록되고, 사도행전, 요한계시록이 마지막으로 기록됩니다.
그렇다면 기록된 시기에 따라서 배치를 해놓은 것이 아니라는 것인데,
어떤 이유로 이런식의 배치를 해놓았을까요?
그것은 말씀을 읽는 우리들의 신앙의 여정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가장 먼저 우리가 알아야 할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입니다.
복음이 신앙의 출발점입니다.
예수님이 이 땅 가운데 오셨고,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인해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복음이 가장 먼저입니다.
예수님의 모습을 보고 들으며 그 복음을 믿어야 합니다.
이것이 복음서가 가장 먼저 기록된 이유입니다.
그리고 바로 사도행전이 나옵니다.
사도행전은 행하는 것, 욺직이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복음을 믿는 자들을 어떻게 움직여 나가시는지를 보여주는 것이 사도행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듣는 것은 누구나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자들도 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하지만 움직이는 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 입니다.
'행전'이라는 단어 자체가 움직이고 살아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복음을 믿는 자들을 움직이게 하는 것이 사도행전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에 주요한 키워드는 '성령'이고,'교회'입니다.
성령은 '프뉴마'라는 단어를 사용하는데, 그 뜻은 바람이라는 의미 입니다.
머무르는 것을 바람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계속 해서 움직이는 것, 각 사람의 마음속으로, 공동체 속으로 살아서 움직이는 것이 성령입니다.
또한, 행하며 움직이는 사람이 모인 장소가 교회입니다.
교회는 조직이 아닙니다. 기업이 아닙니다.
끊임없이 움직이고, 새로워지는 곳이 교회여야 합니다.
이제 사도행전을 시작하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어떻게 움직이게 하실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사도행전을 보시면 좋을것 같습니다.
1- '데오빌로'가 등장합니다. 낯설지가 않습니다.
우리가 누가복음의 시작에서 보았기 때문입니다.
데오빌로는 수신자 입니다.
당시에 책은 어디에 기록했을까요?
지금 처럼 종이에 펴낸 것이 아니라, 양피지에 쓰고, 큰 부자들은 파피루스에 적기도 합니다.
그러니 책 한 권을 기록한다는 것은 지금같은 크기가 나올 수 없고, 보통 방을 꽉 채울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나누어 출판하는 것이 당연한 시대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이 복잡하게 전서, 후서 이런식으로 많이 나누어 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사도행전은 누가 기록했씁니까? '누가' 입니다.
"내가 먼저 쓴 글" 누가복음 입니다.
누가는 이미 누가복음을 데오빌로에게 발신했습니다.
(눅1:3-4) 누가는 누가복음에 이어서 사도행전을 이어서 쓰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 이미 데오빌로를 각하라고 호칭하고 있습니다.
각하는 로마의 고위공직자, 총독 이상의 직위를 가진 자를 높여 부르는 호칭입니다.
각하라는 말은 아무에게나 쓰면 안되고 잘 못쓰면 잡혀갑니다.
데오빌로라는 사람이 누군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지만, 의미 없는 논쟁이기에 넘어가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것은 로마의 높은 지위를 가진 자이고,'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 이라는 이름의 뜻처럼 복음으로 회심한 자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누가복음에서는 '각하'라는 호칭을 부르고, 사도행전은 그냥 '데오빌로여'라고 부른 차이도 있겠죠?
데오빌로와 누가는 신앙적인 친밀감이 깊어졌다고 볼 수 있습니다.
교회라는 공동체가 이러한 공동체 입니다.
사회에서는 사회적 지위에 따라서 사람을 호칭하게 되어있습니다.
대통령님, 사장님, 부장님, 원장님 등 그렇습니다.
사장님도 형제가 되고, 원장님도 자매가 되는 것입니다.
당시에 노예가 존재했던 계급화 시대에 있어서 교회안에서 이러한 모습은 세상에 큰 충격을 줍니다.
개처럼 여겨지던 노예에게 형제라고 부르고, 주인이 그의 발을 씻겨주고, 천하게 여겨진 여자들을 자매라고 떡을 떼어줍니다.
교회 안에서는 직책, 직분이 없습니다.
교회는 이런 곳입니다.
성령 안에서 모두가 녹여지는 것입니다.
세상에 가진 것이 다 녹고 오직 사랑만 남는 곳이 바로 사랑의 공동체인 교회이고, 지금도 역시 그런 교회여야 합니다.
2-누가는 누가복음에 기록된 것을 말합니다.
'성령으로 명하시고, 승천하신 날까지의 일을 기록하였노라.'
3-퀴즈를 내겠습니다. 3절에서 가장 중요한 어절은 어디일까요?
헬라어에서는 문장마다 가장 중심이 되는 주동사가 있습니다.
고난을 받는 것도 중요하고 살아나심의 부활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3절에서 주동사는 '나타내사'입니다.
이것이 3절의 핵심이기도 하고, 사도행전을 기록한 이유이기도 합니다.
'나타내다(파넬오오)'가 주동사이고, '보이시다, 말씀하시다'가 보조동사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땅 가운데 직접 내려오셔서 고난과 십자가의 죽음,
부활을 통해서 이 땅에 오신 이유와 목적은 보이심으로 말씀하심으로 나타내 주십니다.
예수님께서 죽음과 부활로 끝이 아는 것이 아니라,
나타내셨기에 우리에게도 그것을 전할 이유가 생긴 것 입니다.
무엇을 나타내셨나요?
'하나님 나라' 이전에는 이스라엘이라는 나가가 중요했지만, 이제는 하나님 나라가 중요해진 것입니다.
4- 이제는 사도들의 시대가 시작됩니다.
이전에 예수님과 함께한 제자가 아닌, 복음을 전하는 사도가 중심이 됩니다.
'아버지께서 약속하신 것'은 무엇인가요?
5- 약속하신 것은 바로 성령입니다.
6- 제자들이 예수님께 묻습니다.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때입니까?"
좀 더 정확히 해석하면 "이스라엘 그 나라의 회복이 이때입니까?" 라는 말입니다.
여기에 사용한 '회복'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생각하는 힐링,
부흥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이고 행정적인 용어로 사용됩니다.
즉, 제자들이 부활하신 예수님에게 물었던 것은 모라의 박해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의 민족적,
국가적인 주권의 회복을 묻고 있는 것입니다.
7- "너희가 알바가 아니다" 라는 말은 "너희들은 몰라도 된다!"라는 말이 아니라,
그것은 아버지의 권한 임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유대인들의 결혼제도를 살펴보면 쉽습니다.
유대인은 결혼식을 두 번 합니다.
첫 번째 결혼식은 정혼이라고 하는데, 법적으로 부부가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합방을 하지 못합니다.
첫 번째 결혼식은 신부의 집에서 행해집니다.
하지만 그 날 부터 함께 사는 것은 아닙니다.
법적으로는 부부가 되지만,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서 1년 정도 삽니다.
그러면 1년 동안 신랑, 신부는 무엇을 할까요?
신부는 1년 후 신랑의 집으로 들어가 살기 위해 신부수업을 합니다.
신랑은 자신의 아버지와 함께 신부와 거할 집을 짓습니다.
그리고 1년 정도 지나서 신랑의 아버지가 "이제는 데려와도 되겠다"하면 신부를 데려와 두 번째 결혼을하고 함께 사는 것입니다.
이 결혼제도로 우리는 성격의 어려운 부분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셩경에서는 예수님을 우리의 신랑으로 우리들은 신부로 말하고 있습니다.
천국은 마치 신랑을 기다리는 열 처녀와 같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신부로 삼아주셨습니다.
그것이 첫 번째 결혼입니다.(초림)
그런데 결혼이 완성된 것은 아닙니다.
결혼이 완성되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다시 오셔서 두 번째 결혼을 해야 합니다.(재림)
그 기간 신랑 되신 예수님은 무엇을 합니까? 우리가 거할 집(처소)을 예비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신부 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합니까? 신부수업.
우리가 거하는 하늘의 처소에 맞게 우리의 습관도 변화시키고, 우리의 셩격도 변화시키며, 준비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이제는 데려와도 되겠다."란 말을 누가 할 수 있다고 했습니까? 아버지!
7절에서 말하고 있는 말은 이 말입니다.
신부 된 우리가 언제 갈지는, 신랑인 예수님, 신부인 우리의 권한이 아니라,
오직 아버지 하나님의 권한 가운데 있음을 말하고 있습니다.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하늘로 승천하시기 전에 신부된 우리에게 부탁하신 것이 8절에 기록되어있습니다.
8- 첫째, 권능을 받고
우리는 성령의 권능을 받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모두 성령을 선물로 받은 자들입니다.
늘 우리 가운데 성령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런데 성령의 권능을 받으라는 말은, 성령님이 왔다 갔다 한다는 소리가 아니라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령충만한 사람들은 어떤 모습입니까?
방언으로 기도하는 것이 성령 충만한 모습입니까?
여기서 기록된 권능은 '두나미스'라는 헬라어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폭발적인 힘을 이야기 합니다.
성령 충만한 사람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감사와 찬양이 나오는 사람입니다.
변화를 경험하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이 주의 은혜임을 알기에 누구보다 겸손한 사람들입니다.
이런 모습이 성령 충만을 받은 자들의 모습입니다.
둘째 증인이 되라.
증인은 법률적 용어 입니다.
법정에서도 증인으로 나서면 어떻게 합니까?
목숨을 걸고 선서 합니다.
하나님의 증인이 된다는 것은 우리의 목숨을 걸고 증거 하는 자가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 가운데 우리에 있는 곳을 우리의 선교지로 여기고 복음을 증거하는 삶을 살아나가야 합니다.
이것은 말로써 하는 전도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행전!
우리가 삶에서 행함을 말합니다.
세상과 다른 그리스도인의 모습으로 살아내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루살렘- 온유대- 사마리아- 땅 끝으로 점진적으로 확장되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디부터 시작됩니까?
가장 작은 공동체, 우리의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합니다.
성령 충만의 첫 번째 현장은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증인으로 사는 삶의 첫 번째 장소가 가정이 되어야 합니다.
가정에서부터 시작하지 못하면 절대로 나아갈 수도 없습니다.
사도행전을 시작하면서 하나님이 말씀으로 나를 어떻게 움직여 나가실지 기대하시길 바랍니다.
나 또한 듣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 행할지 고민하며 때로는 기도하고, 협력하는 모습들이 있기를 바랍니다.
신랑되신 예수님께서 하늘의 처소를 예비하고 계시며, 신부 된 우리는 하늘의 소망을 두고 이세상에서 끊임 없이 준비해 나가야 합니다.
예수님이 부탁하신 두가지.
"성령의 권능을 받고, 내 증인이 되라." 이를 위해서 날마다 끊임없이 싸워나가시길 바랍니다.
우리 가운데 성령의 충만한 권응이 회복되고, 가정에서 부터 시작된 증인의 삶이 우리의 삶을 바꾸는 행전이 되길 바랍니다.
성경 필사를 하며 묵상하는 하루가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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